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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서 답 찾는 ‘오픈 이노베이션’
기사입력: 15-04-10 18:46   조회6008  
R&D 방법론 넘어 경영 전반으로 확산…대중이 참여하는 크라우드 이노베이션도

‘한편의 시(詩)’라고 칭송 받는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회사가 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이 회사는 자체 디자이너가 없다. 단지 외부 디자이너를 발굴하는 연구소만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탈리아에서 1921년 창업해 지금까지 디자인 기업으로서 세계적인 명성을 유지하고 있다. 바로 주방 및 생활용품 기업 알레시다. 알레시라는 이름은 생소해도 이 회사 제품 중에는 우리 눈에 익은 것들이 많다. 대표적인 것이 세계 최고 디자이너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알레산드로 멘디니의 ‘안나 시리즈’다. 이는 단발머리와 동그란 눈 그리고 웃는 입술을 지닌 사람 얼굴 모양의 와인 오프너다.

알레시는 이처럼 외부 디자이너와 협업하거나 전 세계를 다니며 무명 디자이너를 발굴한다. 세계 각지에서 디자인 워크숍을 개최하고 우수한 작품에 대해서는 라이선스를 사서 상품화한다. 여기에서 대박을 터뜨리는 아이템이 생산되기도 한다. 알레시는 디자인을 모두 외부에서 해결하고 소비자들에 잘 팔릴 수 있도록 상품화하고 생산하는 역할을 한다. 즉 디자이너와 고객을 이어 주는 중재자인 셈이다.


주름 개선 화장품 시장 평정한 P&G
글로벌 소비재 기업인 P&G는 ‘올레이(Olay)’라는 화장품 브랜드를 가지고 있다. 이 브랜드의 대표 제품 중 하나가 ‘올레이 리제너리스트’라는 이름을 가진 주름 개선 화장품이다. 이 제품은 출시 8개월 만에 주름 개선 화장품 시장에서 기존의 글로벌 브랜드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그만큼 제품의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은 것이다. 그런데 주목할 것은 이 제품에 사용된 핵심 기술이 P&G가 직접 개발한 게 아니라 외부에서 들여온 것이라는 점이다. 

이 기술은 프랑스의 소규모 벤처기업인 ‘세데르마’가 가지고 있었다. P&G는 이 회사의 피부 재생과 주름 개선 기술을 발견하고 기술 협업에 성공했다. 그리고 양사가 18개월간 합작 연구를 진행해 주름 개선 화장품 올레이 리제너리스트를 출시했다. 연구·개발(R&D) 기간 18개월은 일반적인 R&D 기간에 비해 절반 정도에 불과했다. 그리고 투입 비용도 훨씬 적었다. P&G는 이 같은 R&D 방식을 ‘결합 개발(C&D:Connect & Development)’이라고 지칭하고 핵심적인 경영전략으로 삼고 있다.

P&G는 신제품의 50% 정도를 이 방식을 통해 개발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많은 미국의 소비재 기업들이 휘청거렸다. 이에 비해 P&G는 매출과 이익이 증가했는데, 신제품 출시에 이러한 R&D 방식에 기인한 바가 크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프링글스 프린츠, 오랄비 전동칫솔, 팬틴 내추럴 샴푸, P&G 페브리즈 방향제 등도 C&D 방식에 의해 개발됐다. P&G의 연구·개발 인력은 1만 명 내외이지만 이러한 방식을 활용해 이의 150배 이상인 150만 명의 R&D 효과를 거뒀다는 자체 분석도 있었다.

이처럼 외부의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활용해 상품을 개발하는 방식을 ‘오픈 이노베이션’이라고 지칭한다. 오늘날 이 말은 새로운 기술을 개발하는 연구·개발 방식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폭넓게 기업 경영 전반에 걸쳐 외부의 아이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이 용어와 개념을 최초로 주창한 로버트 체스브로 미국 UC버클리대 교수는 R&D 투자 효율성을 높인다는 관점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의 필요성을 찾았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컨버전스 시대에 산업 간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상품 라이프사이클의 변화도 심해지면서 경영 전반에 걸친 다양한 관점에서 오픈 이노베이션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에게 익숙한 많은 글로벌 기업들도 오픈 이노베이션을 전략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P&G의 C&D뿐만 아니라 IBM의 ‘이노베이션 잼(Innovation Jam)’, 레고의 ‘쿠소(Cuusoo)’, 제너럴일렉트릭(GE)의 ‘퀘스트(QUEST)’, 지멘스의 ‘테크노 웹(Techno Web)’ 등이 이들 기업의 오픈 이노베이션 프로그램이다. 어떠한 규모의 기업이든지 R&D뿐만 아니라 기업 경영의 전반에 걸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필요로 한다. 이를 통해 기업의 경쟁력을 보다 빠르고 효율적으로 제고하기 위해 오픈 이노베이션을 전략적으로 활용할 가치가 있다. 오픈 이노베이션 전략을 성공시킬 고려 사항은 무엇일까.

첫째, 연구·개발 관점에서 보다 폭넓은 전사적 관점으로 오픈 이노베이션의 영역을 확장해 보는 것이다. 오픈 이노베이션을 통해 기업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것은 차별화다. 차별화의 요소는 R&D뿐만 아니라 생산·마케팅·영업·관리 등 기업의 제반 영역에 존재한다. 이에 따라 경영 전반에 걸쳐 활용할 수 있는 외부 아이디어가 있다면 이를 적극 활용하는 벤치마킹도 오픈 이노베이션의 수단으로 활용한다.


‘겨울왕국’ 신화 만든 디즈니의 창조적 벤치마킹
약 12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올린 ‘겨울왕국’은 디즈니의 창의적 벤치마킹 결과다. 디즈니는 이 작품으로 애니메이션의 제왕으로 화려화게 복귀했다. 디즈니는 한동안 강력한 경쟁자인 픽사와 드림웍스에 고전했었다. 디즈니의 작품들은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와 동화 같은 상상의 내용들로 사람들에게 꾸준하게 사랑을 받아 왔다. 그러나 픽사와 드림웍스의 출현은 디즈니의 시장을 크게 잠식했다.

픽사는 디지털 기반의 새로운 기술력을 보여줬다. 그전에는 볼 수 없었던 고감도의 그래픽을 통해 고객을 사로잡았다. 이를 선보인 대표작 ‘토이 스토리’, ‘인크레더블’ 등은 공전의 히트를 기록했다. 드림웍스 또한 새로운 캐릭터와 스토리로 신선한 충격을 줬다. 이는 기존의 디즈니와는 사뭇 달랐다. 디즈니의 판에 박힌 이야기와 달리 강렬한 개성과 유머를 담아냈다. 대표작 ‘슈렉’의 피오나 공주는 못생겼고 ‘쿵푸 팬더’의 주인공 포는 무술 영화의 주인공답지 않게 너무 느리고 뚱뚱했다.

디즈니는 경쟁사의 약진을 통해 시대 상황에 따라 변화하는 고객들의 니즈를 절감했다. 그러나 경쟁사의 성공 요인을 그대로 따라 하지 않았다. 여기에 디즈니만의 감성을 더했다. 그래서 탄생한 작품이 ‘겨울왕국’이다. 이 작품에서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엘사와 안나라는 아름답고 강한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백마 탄 왕자는 그저 조연에 불과하다. 그래픽은 마치 실사 영화를 능가하는 생생함을 보여 줬다.

레고는 2008년 고객으로부터 아이디어를 받고 고객 상호간에 아이디어를 공유하는 사이트 ‘쿠소’를 오픈했다. 여기에 누구든지 레고 블록으로 제작한 자신의 작품을 올릴 수 있다. 이 작품들에 대해 회원들이 평가하고 1만 명 이상이 투표하면 제품화한다. 이미 레고는 이보다 앞선 2003년에 고객 스스로 온라인에서 레고 디자인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이를 통해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레고를 직접 디자인하고 주문할 수 있게 했다. 레고의 디자이너는 120여 명에 불과하지만 이 프로그램을 통해 활동하는 자발적 디자이너는 12만 명에 이른다.

덴마크에서 출범해 80여 년의 역사를 가진 레고도 2000년대 들어 위기에 봉착한다. 1990년대 중반부터 비디오 게임에 고객을 빼앗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1998년 회사 설립 후 최초로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2000년대 중반까지 지속됐다. 2004년 새로운 최고경영자(CEO) 빅 크누드스토르프에 의해 전반적인 경영 혁신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비핵심적인 사업을 정리하고 본연의 조립 완구 사업에 집중한다. 이 과정에서 변화하는 환경에 따라 고객의 니즈를 수용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했다. 그리고 오픈 이노베이션은 이를 가능하게 하는 핵심적인 전략으로 자리 잡게 됐다.


쿼키, 상품 아이디어에 온라인 투표
둘째, 내부 역량이 밑바탕돼야 오픈 이노베이션이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장점만을 고려해 무조건적으로 시도하면 오히려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왜 외부와의 연결이 더 유리한지 사전적으로 고려해야 한다. 그리고 충분한 내부 성찰을 통해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그래서 자신의 강점을 강화하면서 약점을 보완하는 형태의 외부 연계가 바람직할 것이다.

특히 자신보다 덩치가 큰 기업과의 연계나 인사이드 아웃, 즉 내부적으로 활용되지 않는 기술이나 아이디어를 다른 기업이 활용할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은 사전 검토가 더욱 절실하다. 일례로 미국의 ‘고(GO)’라는 회사가 있었다. 이 회사는 태블릿 PC에 사용하는 운영체제를 개발한 벤처회사였다. 이 회사는 자신이 개발한 운영체제에서 응용 가능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위해 마이크로소프트와 손잡았다. 공동 연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고’의 독점적 정보가 공개됐고 결국 마이크로소프트는 반년 뒤 자체 태블릿용 운영체제를 내놓았다. ‘고’는 막대한 손실을 보게 된다. 

오픈 이노베이션의 선두 주자 P&G는 외부로부터 기술을 확보할 때는 3가지의 기준을 고려한다고 알려져 있다. 우선적으로 매년 각 사업부에서 소비자의 니즈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다. 이를 취합해 우선순위 10개 항목을 파악하고 이를 위한 기술적인 과제가 무엇인지 정리한다. 그리고 인접 제품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보다 넓은 카테고리에서 활용할 수 있는 기술들을 발굴한다. 끝으로 특정 기술을 확보할 때 뒤따르는 영향 요인을 분석한다. 이러한 점검 과정을 통해 자체적으로 개발해야 하는 기술을 파악하고 외부 아이디어를 탐색해야 하는 영역을 명확하게 한다.

셋째, 혁신적인 아이디어는 기업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일반 대중으로부터 얼마든지 혁신적 아이디어를 가져올 수 있다. 일찍부터 개인 사용자들은 기업의 혁신 활동에 제한적이나마 참여해 왔다.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프로슈머’라는 개념은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의 합성어로, 제품의 개발 과정에 소비자의 의견을 적극 반영해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신제품 개발 과정에 대중을 적극적으로 참여시키는 방법이 ‘크라우드 이노베이션(Crowd Innovation)’이다. 


소셜 상품 개발 플랫폼인 미국의 ‘쿼키(Quirky)’는 크라우드 이노베이션을 활용하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2009년 6월 벤 커프만이 설립했고 현재 회원은 100만 명이 넘는다. 쿼키의 홈페이지에는 매주 2000개 이상의 상품 관련 아이디어가 올라온다. 올라온 아이디어에 대해 회원당 하루 10표까지 투표할 수 있다. 총 200표 이상 득표하거나 내부 임직원 평가에 의해 선정된 아이디어는 전문가의 검토를 받게 된다.

매주 목요일 퀄키 뉴욕 본사에서는 ‘에발(Eval)’이라고 불리는 최종 단계의 제품 아이디어 평가 회의가 진행된다. 여기에서 전문가의 평가를 거쳐 살아남은 15개의 아이디어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한다. 이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해 공정성을 높이기도 한다. 이렇게 해서 최종 3개의 아이디어를 선정하고 이를 상품화한다. 아이디어 제안자는 판매에 따라 일정 부분의 수익을 배당 받는다. 소셜 네트워크의 진화에 따라 혁신의 주체가 소수의 기업에서 다수의 대중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것 또한 오픈 이노베이션 차원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


* 이 기사는 2015년 4월 8일 한경비지니스에도 게재됐습니다. (기사 보러가기)

강성호 세계경영연구원(IGM)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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